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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패총 현장사진
동래패총은 정말 찾기가 힘들었었다. 택시를 2번이나 탔는데도 찾지 못하였다. 처음택시를 탈 때는 기사아저씨가 착각을 하여서 복천박물관에 데려다주었고 두 번째 택시를 탔을 때는 동래패총 근처에만 내려주셨다. 두 번째 택시에서 내린 뒤 한시간반정도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동래패총에 도착하였다. 힘들게 온 만큼 동래패총에 대한 기대도 컸었다. 하지만 동래패총은 그 기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풋살 구장만한 크기의 잔디밭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해수면의 변동으로 인해 바닷가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동래패총은 철기시대문화의 유적이다. 동래패총의 존속시기는 대체로 3~4C 전 반경으로 추정된다. 동래패총에는 시루·동물 뼈 골각기·사슴, 소, 말 등의 동물 뼈·쇠도끼·쇠낫·철기류·불탄 흙덩어리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홍합·굴·어패류 등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동래패총이 위의 설명과 같이 바닷가였음을 추측할만한 단서가 된다. 마지막으로 동래패총에서만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적이 있는데 그것은 철을 달구었던 자리로 여겨지는 야철 노지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최초의 고대 철생산 관련 유적이다. 동래패총은 대규모로 발견된 철기시대 유적이 잘 보존되지 않아 많이 훼손되거나 사라진 상태이지만 위의 유적들과 야철 노지를 비롯하여 많은 질 좋은 유물들이 발견된 점을 볼 때 동래지방의 강력한 정치적 집단이 출현하는 전환기에 형성된 생활 유적이라 볼 수 있다.
동래패총을 전체적으로 볼 때 이곳의 유적이 방대한 걸로 보아 다른 지역보다 인구도 많았을 것이라 추정되고 그에 따른 사회질서가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로인해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정말 정치적으로 강력했을 것 이라고 추정된다.
이번 패총답사를 하면서 그 당시 사람들의 심리나 생활상이 지금우리의 기본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당시에도 그들만의 사회질서나 정치적인질서가 확립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역사는 현재의 산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동래패총은 최초의 철기생산 유물이 발견된 큰 가치가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는 길 하나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곳이 없었다. 이런 면에서 동삼동패총과 동래패총이 큰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을 볼 때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도 가장중요한 일이지만 문화재를 알리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면을 간과하지 못하면 문화재도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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