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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시리아란 나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보도록 하자.

 

시리아의 지리적 위치

시리아의 지리적 위치



  우선 시리아란 지중해 동부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위치한 서아시아에 있는 공화국으로 정식명칭은 시리아 아랍 공화국이다. 수도는 다마스쿠스 (Damascus)이다. 최대도시는 알레포이다. 국경일은 3월 8일(혁명 기념일), 11월 16일 (해방기념일) 이다.

 

 

시리아 국기

시리아 국기



  이 국기의 의미는 위로부터 빨강·하양·검정의 3색기이며 빨강은 혁명을, 하양은 평화를, 검정은 지난날에 당한 억압을, 별은 아랍의 통일을 상징한다. 1958년 이집트의 합병으로 아랍연합공화국이 되었을 때 현재의 기를 국기로 제정하였으며, 1971년 이집트·리비아와 함께 아랍공화국연방을 결성하여 같은 국기·국장·국가를 쓰기로 하고 1972년 하양 바탕의 별 2개를 매로 대체한 후 다음해 1월 연방기로서 정식 제정하였다. 시리아는 1980년에 아랍연합공화국 당시의 기를 국기로 다시 제정하였다. 
참고로 리비아는 이집트의 이스라엘 접근 정책에 반발하여 1976년 이래 전혀 다른 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집트는 1984년에 아랍공화국연방 당시의 기에서 매를 독수리로 바꾼 후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시리아의 역사를 알아보도록 하자.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문명들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으며 페르시아 멸망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다. 대왕 사후, 그의 부하인 셀레우코스 1세에 의해 안티오키아를 수도로하는 셀레우코스(셀루키드) 왕조가 건국되었다. 이후 왕조는 번영하였으나 파르티아, 이집트등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몰락해버렸고 기원전 64년 로마장군 폼페이우스가 안티오키아를 점령함에 따라 로마에 귀속되었다. 그후에도 시리아는 동방속주의 중심지로 크게 번영하였으며 그 수도인 안티오키아는 속주시리아의 수도로서 외항 셀레우키아를 통한 외부와의 교역으로 크게 번영하였다. 로마의 동방군단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가상적국인 파르티아를 견제하는 기지였다.

이후 기독교가 크게 전파되었으며, 안티오키아가 아시아 대주교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후 시리아는 4세기말 로마의 동서분열로 동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제국이 쇠퇴하면서 이슬람제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시리아의 중심지인 다마스쿠스는 우마위야 왕조시대 왕국의 수도로서 크게 번영하였다.

1260년 몽골군에 점령되었으나 맘루크의 영웅 바이바르스가 나타나 이들을 몰아내고 맘루크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차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시리아를 위임통치령으로 삼고 지배를 공고히 하였다. 최초의 시리아 국기는 1932년에 만들어졌으며(지금과는 전혀 다른 국기), 현재의 시리아는 1944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1958년 이집트와 통합하여 아랍 연합 공화국을 결성한적이 있었지만 시리아측과 이집트측의 견해차가 계속 커져 1961년 군사 구테타를 계기로 탈퇴 하였다. 1970년 알라위파(시아파의 분파) 출신의 하피즈 알 아사드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2008년 8월 21일에 시리아와 러시아는 회담을 가졌고, 이 회담에서 시리아에 러시아 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중동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리아의 위치

시리아의 위치



  시리아의 지리를 알아보도록 하자. 시리아의 대부분은 메마른 평원이지만, 지중해와 맞대고 있는 일부 지역은 녹지이다. 북동부의 "알 자지라", "호란" 지방이 주요 농경지대이다. 시리아의 가장 중요한 수원인 유프라테스 강은 시리아 동부를 가로지른다. 이곳은 문명의 요람으로 불리는 지역의 일부이기도 하다.


시리아의 주요도시들

시리아의 주요도시들


 

  주요 도시로는 남서부의 다마스쿠스, 북부의 알레포와 홈스가 있다.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지중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시리아의 기후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고지대에서는 겨울에 눈이 때때로 내리기도 한다. 시리아 중심부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밤낮의 온도차가 크고 지중해 연안은 여름에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겨울에는 강수량이 많은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강우량은 사막지대를 제외하고는 연평균 250 mm 이하이며 서부지역의 경우 750mm에서 최고 1,000mm다.

 

  시리아의 상업적 가치가 있는 석유 유전은 1956년 시리아 북동부에서 발견되었다. 주요 유전지대로는 수웨이디야, 콰라취, 루매얀, 태옘, 다이르 앗 자우르가 있다. 이 유전지대는 이라크의 모술과 키르쿠크 유전지대와 이어져있기도 하다. 석유는 1974년 이래 시리아의 주요 자연자원 수출품목이다. 천연가스는 1940년 제베사에서 첫 발견되었다.

 

  시리아의 주요 수출품과 수입품을 알아보자. 주요 수출품으론 원유, 천연가스, 화학약품, 직물, 의류, 가죽, 식료품, 음료, 담배, 인산 광물, 면, 석유제품, 가축가 있다.

 

  주요 수입품은 기계류, 식료품, 음료, 담배, 금속제품, 직물, 종이류, 석유제품, 가축, 화학제품, 운송설비가 있다.

 

  이를 통해 시리아의 주요 수출국과 수입국을 알아보자. 주요 수출국으론 독일(16.7%), 이태리(16.3%), 레바논(14.1%), 프랑스(11.2%), 사우디(7.4%), 스페인(3.6%), EU(57.2%) 이고 주요 수입국으론 이태리(8.6%), 독일(7.9%), 한국(4.5%), 미국(4.1%), 프랑스(3.8%), 일본(3.3%), EU(33.3%)가 있다.

 

  시리아의 종교의 분포를 알아보면 이슬람(순니) 74%, 이슬람(Alawite, Druze 및 기타) 16%, 기독교 10%, 기타 (다마스커스, 알-까시미, 알렙포 소수 공동체 유대교 포함) 1% 이다.

 

  언어는 아랍어를 주로 사용한다. 아랍어가 공용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쿠르드어, 아르메니아어가 사용된다. 또 영어가 2언어로 가장 많이 쓰인다. 프랑스어는 극소수가 쓴다.

 

  시리아의 주민은 아랍인이 90%(아랍인 90.3%, 크루드인, 아르메니아인 및 기타 9.7%)로, 그 외에도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 기타 등이 있다. 시리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랍인도 있어서 민족성도 다양하다. 소수민족으로서 아시리아인, 북코카서스계 민족, 남투르크계 민족도 있다.

 

  시리아는 다른 나라와 비교되는 특이한 점이 있다. 시리아는 북한 단독 수교국이다. 공식 수교는 1966 7월 19일에 맺었다. 대한민국은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나, 시리아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여 대한민국과의 수교에 미온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시리아는 대한민국의 몇 안되는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시리아는 경제·문화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교역량 1999년, 단위: 1000달러 : 수출 237,714 수입 5,338 무역수지 232,376 한국의 대 시리아 주요 수출품 : 자동차, 섬유, 전자, 전기, 한국의 대 시리아 주요 수입품 : 농산물, 제약원료) 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역량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마스쿠스에는 무역관이 개설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기업과 교민도 진출해 있다. 시리아에서는 1988년 하계 올림픽과 2002년 아시안 게임 등에 선수 및 임원단을 파견하는 등 체육 교류도 이루어지고 있다.



  시리아와 한국은 외교적으로 대한민국과 비슷하기도 하며, 한국이 친미(親美)국가라는 이유로 관계가 좋지 않기도 하며, 그렇다고 해서 수교관계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적으로 시리아는 한국을 경계하는 구석도 있다. 이스라엘이 또한 한국의 편을 들기도 하기 때문에 시리아 정부는 이로 인한 비난도 있다. 오늘날 시리아와 한국은 관계가 경계적이라고 할수도 있다.

 

  시리아가 또 특이한 관계를 맺은 국가가 있다면 이스라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 정부는 2008년 5월 이후, 터키의 중재로, 간접 평화교섭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여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여 교섭도 중단되었고 게다가 같은 해 말,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이유로 시리아는 교섭동결을 표명하였다. 최대의 초점은 코란고원의 귀속문제인데, 시리아와 이란 간의 관계, 시리아가 지원하는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 히즈보라의 무장문제 등도 교섭 과제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와의 관계 수복을 도모하여, 평화교섭재개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9년 3월에 발존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도 교섭재개의 원칙을 향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코란고원 반환에 소극적이고, 시리아도 또한 이 정권에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는 등, 교섭재개를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


벨신전

벨신전


벨신전

벨신전





  시리아의 유명한 곳으론 팔미라 유적이란 곳이 있다. ‘사막의 궁전’이라 불린 오아시스 도시로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사막 한복판에 우뚝 선 야자수 숲과 주변의 폐허 같은 유적지이다. 사막의 황량함과 선연한 대조를 이루며 외롭게 서 있는 이곳이 바로 팔미라다. 팔미라는 시리아 동부 사막에 있는 고대 오아시스 도시로 오리엔트 세계와 지중해 세계를 잇는 무역 중계지로 번영을 누렸다. 도시국가로서 팔미라의 전성기는 로마의 지배를 받던 기원 전후부터 3세기경이다. 당시 이곳에는 물건을 싣고 사막을 건너는 대상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으며, 이들은 팔미라를 ‘사막의 궁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팔미라의 클레오파트라’를 자처했던 제노비아가 로마의 땅을 점령하고 로마와 대적하면서 팔미라는 급속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11세기 경에는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팔미라 유적들은 대부분 로마 지배기의 것이다. 도시 기본 구조 자체가 로마식으로 정교하게 계획된 모습이다. 길게 뻗은 주로와 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도로를 통해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누는 방식이다. 교차로에는 탑문을 세우고, 길 양쪽으로 신전, 극장, 아고라, 공중목욕탕, 왕궁, 법원 등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했다.


벨신전 내실의 천장 무늬

벨신전 내실의 천장 무늬




  푸른 야자나무 숲만 남아…
팔미라의 입구 역할을 하는 아치형 석조문(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가 세운것이다)을 통과하면, 1km가 넘는 대로가 나타난다. 길 양쪽에는 높이 9.5m의 원기둥이 늘어서 있다. 건축물 중에는 거대한 벨 신전과 극장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파손되어 터만 남아 있다. 도시 서쪽 외곽에는 무덤의 계곡이 펼쳐져 있다. 탑묘, 가형묘, 지하분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을 볼 수 있다. 제노비아 이후 쇠퇴의 길을 걷던 팔미라는 11세기 이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후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남아 있던 유적마저 파묻히자 잊혀진 도시가 되어버렸다.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난 1930년대에야 비로소 팔미라 유적 발굴과 복원작업이 시작되었으나 복원 정도는 미미하다. 때문에 푸른 야자나무 숲이 아니라면 팔미라는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푸른 야자나무 숲은 과거 이곳의 지명이 타드몰(Tadmor, 야자수)이었음을 상기시켜 주려는 듯하다.


 출처 : 위키 백과 '시리아' , http://www.werinsyria.com/ (시리아 한국 학생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