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Leeds Utd vs Man Utd

Leeds Utd vs Man Utd




 이번에 다양한 축구 더비에 대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장미더비라고 알려진 리즈 유나이티드 V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더비를 소개하겠습니다.


  국내 언론에선 흔히들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를 장미전쟁이라고 표현하는데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옳지 못한 표현입니다. 리버풀과 맨유의 더비는 레즈 더비(Reds derby)로 표현하는게 옳은 표현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우선 장미전쟁이라는 것은 1455∼1485년에 있었던 왕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국의 내란을 말합니다.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장미전쟁의 내용을 빌리자면 장미전쟁이란 잉글랜드 왕권을 놓고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가 가문이 싸운 전쟁으로 랭커스터가는 붉은 장미를 문장으로 하였고 요크가는 흰 장미를 문장으로 삼았습니다. 요크공의 리처드는 랭커스터가의 헨리 4세가 플랜태저넷왕가의 리처드 2세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것이므로 요크공 리처드가 랭커스터왕조 이상으로 왕위계승권이 있다면서 헨리 6세 때 궐기하였습니다. 여기에 귀족간의 싸움이 결부되어 내란이 일어나고 이 내란의 본질은 귀족전쟁이라는 점입니다.


 1455년 세인트올번스전투로 시작되어 1460년 리처드가 웨이크필드에서 전사하여 장남 에드워드가 그뒤를 이었고 1461년 에드워드는 랭커스터파를 타우턴전투에서 격파하고 헨리 6세를 국외로 추방하였습니다. 에드워드는 이 싸움 직전에 즉위하여 에드워드 4세라 칭하고, 랭커스터파 사람들을 반역죄로 몰아 영지를 몰수하고 헨리 6세를 체포하여 투옥하였습니다. 그후 에드워드 4세 옹립에 큰 공이 있었던 요크파의 워릭백작이 반란을 일으켜 1470년 에드워드 4세를 국외로 추방하고 헨리 6세를 구출하였습니다. 에드워드 4세는 세력을 회복, 귀국하여 1471년 바넛전투에서 워릭 백작을 패사시키고 그 결과 헨리 6세는 다시 붙잡혀서 살해되고 랭커스터왕조는 멸망하였습니다. 

 이후에드워드 4세는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의회를 열지 않고 중상주의적인 정책을 채용하여 절대왕정의 경향을 나타냈으나 1483년 사망하였습니다. 12세 된 장남이 에드워드 5세로서 즉위하였으나 왕통이 확립되지 못하고, 전왕의 아우 글로스터공 리처드가 에드워드 5세를 투옥하고 리처드 3세라 칭한 후 동왕을 살해하였습니다. 이 무렵 대륙에 망명해 있던 랭커스터계의 리치먼드백작 헨리튜더는 1485년 웨일즈에 상륙하여 보즈워스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패사시켜 30년에 걸친 장미전쟁은 끝났습니다. 이후 헨리는 즉위하여 헨리 7세라 칭하고 튜더왕조를 열었습니다. 



 위의 내용이 바로 랭커스 가문과 요크 가문의 장미전쟁의 내용입니다. 맨유는 여기서 말한 랭커스 가문의 랭커셔 주에 연고지를 두고 있으며 , 리즈 유나이티드는 요크 가문의 요크셔주에 연고지를 두고있습니다. 때문에 연고지를 바탕으로한 두 가문의 전쟁 때문에 이 두팀간의 경기를 장미전쟁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이 맨유팬들은 어떤 더비보다 이 역사깊은 장미더비를 중요시 여긴다고 합니다. 


 
최근 맨유를 침몰시킨 리즈의 백포드

최근 맨유를 침몰시킨 리즈의 백포드




 맨유와 리즈 유나이티드의 2010년 1월기준으로 역대 상대전적은 105경기 45승 35무 25패로 맨유가 앞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2010년 1월 3일 FA컵 64강에서 6년만에 벌어진 장미전쟁에서 맨유의 홈에서 리즈 유나이티드가 1:0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2부리그와 3부리그를 오가는 리즈 유나이티드 때문에 칼링컵이나 FA컵에서 밖에 장미전쟁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리즈 유나이티드가 예전의 명성을 찾아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하여 역사깊은 장미전쟁을 다시 보기를 기대해 봅니다.

 

출처 - Liverpool F.C.(cafe.daum.net/liverpoolfc) , 네이버 백과사전